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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리뷰

추리소설 추천 : 이중도시

by 에일라거 2020. 9. 9.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 책에서 묘사된 설정의 시각화를 통해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글입니다.

 

한 여자가 죽었다. 아침에 발견된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비틀어진 자세로 길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다, 라는 추리소설의 전형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추리라는 내용 그 자체보다도 책의 설정이 기묘해서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라며 전반부를 갸웃거리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만치 이 설정에 익숙해져갈 때의 그 빠져드는 느낌이란....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이 책은 베셀과 울코마라는 두 도시국가 사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궤적을 따라가는 내용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 베셀과 울코마라는 두 도시국가의 설정이... 진짜 재미있어서 한번 세계관을 도식화해보려고 한다.

 

1. 베셀과 울코마는 도시국가이다.

2. 베셀과 울코마는 둘 다 물리적으로 같은 영토에 존재한다. (이중도시)

 

물리적 영토

물리적으로 같은 영토 안에 어떻게 두개의 도시가 존재하는지를 그림으로 알아보자. 먼저 위의 그림이 물리적인 영토를 위에서 바라본 것이라 하자. 검은색은 블록, 흰 색은 길을 의미한다. 

 

이때, 베셀과 울코마 각 도시국가가 "주장하는" 자신의 영토는 다음과 같다.

 

각 도시국가는 세가지를 주장한다.

 

1. 이 구역은 완전한 나의 영토다!

2. 이 구역은 당신과 공유하는 나의 영토다!

3. 도로는 무조건 두 도시가 공유한다!

 

마치 예전의 동베를린 / 서베를린 처럼 영토가 딱 절반으로 나누어져 있으면 편하겠지만, 이 두 도시는 그렇지 않고 하나의 도시에 자신의 구역들이 마구 혼재해 있는 데다 주장하는 바도 여러가지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구분이 생긴다.

 

완전지역

서로가 자신들의 완전한 영토다! 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을 "완전지역"이라고 한다. 이 곳은 분쟁이 없는 아주 평화로운 곳... 

 

교차지역 / 불일치지역

이제 두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서로가 공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 이런 곳은 "교차지역"이라고 한다.

 

진짜 문제는 서로 자신의 완전한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도 생긴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분쟁 지역으로, 이런 구역은 "불일치지역"이라고 한다. (서로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

 

이런 곳은 소설에서 "강한 교차 상태에 있다" 라고도 표현한다. (반대로 약한 교차상태라는 것은 완전지역에 가깝다는 뜻이다. 교차지역에서도 특정 도시국가의 건물이나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거나...)

 

그러면 이런 곳에서는 "국경"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사실 완전지역은 군데군데 산재해 있다 뿐이지 그냥 다른 나라의 영토이기 때문에 남의 영토를 침범할 일이 없지만, 교차지역이나 불일치지역에서는?

 

이것을 다른 나라 (다른 도시) 의 모든 것을 억지로 인식하지 않는 식으로 해결한다. 교차지역에 있는 베셀 사람의 코앞에 위풍당당한 울코마의 대성당이 있어도 거기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모든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말이 되나? 싶은데 의외로 해결을 잘 했다.

 

* 안 본다. (사람, 건물, 차, 물건, 모든 것을 "안 보았다" 라고 표현한다)

* 안 느낀다. (다른 나라의 건물의 유리창에서 햇빛이 반사되어 따스해도 느끼지 않는다)

* 도로에서 다른 나라의 차를 최대한 인식하지 않으면서 회피한다. 즉, 절대 경적을 울려서는 안된다.

 

교차지역에서 다른 나라의 것을 인식하는 것은 모두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도로에서 다른 나라의 차가 급정차를 하니 경적을 울렸다.

* 희안한 옷을 입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을 보았다.

* 교차지역에 서 있는 베셀 사람이 떨어뜨린 물건을 울코마 사람이 주웠다.

  - 그 물건은 베셀의 물건으로 울코마 사람은 그 물건을 "안 본다."

* 베셀의 완전지역에서 울코마의 완전지역으로 넘어갔다.

 

이를 위해 어릴 때부터 서로를 "안보는" 것을 철저히 교육한다. 엄청나게 답답할 것 같지 않은가? 마치 시야의 절반을 가리고 살아가는 꼴이다. 그리고 솔직히, 까딱하면 침범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이를 단속하기 위해 "침범국"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맹점이 생기는 것이, 이 도시국가가 서로 주장하는 각자의 영토, 그리고 서로를 안 보는 사람들, 이로 인해 일종의 도시전설 같은 것이 생긴다. 그렇다면 서로가 자기 영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곳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오르시니

이렇게 철저한 교육을 통해서 서로를 안보게 되어, 없지만 존재하는 사람들, 없지만 존재하는 구역이 생겨난다. 이것이 오르시니다. 이것도 여기까지만 설명하려고 한다. 더 하면 스포일러다.

 

 

이런 설정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마음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 자체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비해 굉장하다! 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이러한 설정이 버무려져서 정말 박진감 넘치고 때로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한다. (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하필이면 거기서 완전지역이!!!)

 

차이나 미에빌의 이중도시,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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